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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목소리 뒤로 노을이 깔린다

강허달림은 무대를 가리지 않는다. 최근 팽목항에서 노래를 불렀다.

<쇼미더머니 3>에 출연했을 때는 이 독특한 목소리의 가수를 궁금해하는 이가 많아 포털 검색어 1위에 올랐다.

2014년 10월 25일 (토) 10:22:17 [371호]
임지영 기자

밤잠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다. 원래도 계획한 대로 하루를 보내지 못하면 잠들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러든 말든 아이는 규칙적이다. 아침 7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엄마의 짧은 머리카락을 잡아당긴다. 간밤에도 3시간밖에 못 잤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밀린 빨래를 했다. 지난해부터 강허달림의 일상에는 음악 외에 육아가 추가됐다. 몸 전체를 써서 노래를 부르는데 출산 후 발성이 틀어졌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끄떡없던 ‘꿀성대’는 요즘 세 곡만 부르면 쉰다. “너 낳고 나서 엄마가 요즘 힘들어.” 15개월 된 딸아이를 향해 가끔 하소연을 한다.

강허달림의 목소리는 특별하다. <슈퍼스타 K> 심사위원 윤종신의 표현을 빌리면 ‘희소성’ 그 자체다. 허스키하면서 ‘블루지(bluesy·블루스 스타일의)’한데, 말로는 어떻게 해도 설명이 빈약하다. 음악을 한 지 15년, 얼마 전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Mnet <쇼미더머니 3>에 참가한 힙합 뮤지션 아이언의 피처링에 참여하면서 인상적인 무대를 보여줬다. 프로그램 작가가 그녀의 팬이었다.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에도 나왔다.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 출연은 처음이었다. 15년의 관록이라면 이런 일에 최대한 담담하다는 것. 되레 들뜬 매니저를 진정시켰다. “몇 년 전이었다면 많이 기대하고 부풀어 있었을 거다.” 이런 스타일의 가수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린 게 의미 있었다. 주변에서는 ‘드디어 달림이 방송에 나왔구나’ 하며 반겼다. 말은 그래도 역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잘하고 싶었다. 추석 전 시댁과 친정으로 강행군을 하느라 감기가 왔다. 잠긴 목을 푼다고 대기실에서 하도 소리를 질러 다른 출연자 매니저의 항의가 들어와 차에서 연습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윤무영</font></div>15년차 가수 강허달림은 요즘도 메트로놈을 틀고 책 읽는 연습을 꾸준히 한다. 자기 박자를 갖기 위해서다. 
ⓒ시사IN 윤무영


15년차 가수 강허달림은 요즘도 메트로놈을 틀고 책 읽는 연습을 꾸준히 한다. 자기 박자를 갖기 위해서다.


 


방송 후인 10월3일, 이번에는 ‘팽목항 기다림 문화제’ 무대에 섰다. 진도의 거센 파도를 등지고 그녀가 ‘기다림, 설레임’을 불렀다. 말을 이을 수 없어서 연달아 노래만 불렀다. 나중에 어렵게 뱉은 말은 딸에 관한 얘기였다. “아이를 그냥 보고만 있어도 눈물이 나는데…” 끝을 맺지 못했다. 가지 않으려 했다. 녹음을 앞두었고 회사에도 얘기할 상황이 아니었다. 가든 안 가든 걱정할 것 같다며 남편이 가자고 했다. 손수 운전해주었다. 15개월 된 아이와 함께였다. 지난해 세월호에 탈 때도 아이와 동행했다. 책을 싣고 강정 마을을 향하는 길이었다. 선상 공연을 했다. 참사가 일어나기 6개월 전이었다.

강허달림은 무대를 가리지 않는다. 거리와 콘서트장, 강정과 용산을 넘나든다. 시작은 유성기업이었다. “달림아 도와줘.” 일을 도와주던 선배가 어느 날 갈 곳이 있다고 했다. 깃발이 펄럭이는 낯선 곳이었다. 오랜 파업으로 사람들은 지쳐 있었다. 공연을 시작하자 노동자 가족이 모였고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촛불을 들고 움직이는데 마음이 짠했다. 그런 세계를 잘 몰랐다.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부르는 게 몫이니까, 내 노래가 필요하다면 가서 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사람이 되어가고.” 곳곳에서 오빠, 언니의 모습이 보였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일 수도 있다. 오빠들은 공장기술직이고 일용직 목수다. 불러주는 곳에 다 가지 못하는 건 무대 상황 때문이다. 음향이 열악해서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아 좀 지쳤다.

지금은 수몰된 전남 승주군의 시골마을에서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이선희의 노래를 듣고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고 재즈아카데미에 들어가 블루스 클럽 저스트블루스와 신촌블루스의 보컬로 활동한 후 솔로 앨범 2장을 냈다. 대략적인 그녀의 이력이다. 이선희의 팬클럽 홍당무 회원이었다. 실용음악과가 있는 줄 알았더라면 그 순간부터 준비했을 텐데 서울에 와서야 알았다. 가족들은 그녀가 뭘 하든 말리지 않았다. 막내의 특권이다. 한량 기질과 끼는 아버지에게 혼자 오롯이 물려받은 것 같다. 20대 초반에는 미성이었다. 허스키한 음성은 연습의 결과다. 목이 쉬었는데 부르고 또 불렀다.


블루스에서 사운드 그리고 인생을 배웠다


저스트블루스에서 ‘풀문’이라는 밴드를 결성하면서 사운드의 본질을 배웠다. “앞에서 노래를 부르면 밴드가 꿈틀꿈틀대며 사운드로 그림을 그려준다. 더 내지르고 싶으면 소리를 확 올려주고 사그라지게 노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어느새 그렇게 만들어준다.” 당시를 회상하던 강허달림이 허공에 그림을 그렸다. 블루스가 그녀의 ‘광기’를 건드렸다. 마약하는 줄 알았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카피곡 대신 창작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촌블루스에선 밴드와 섞이지 못했다. 선연한 기억 중 하나는 2004년 12월31일 울산에서 한 마지막 공연이다. 그 뒤로 그녀를 부르지 않았다. 상처가 되었다. 신촌블루스 출신으로 불리는 것도 싫었다. 돌아보니 자기가 가수로 자리매김하는 데 떠나지 않을 이름이었다. 얼마 전 자기를 영입했던 엄인호 선생을 찾아가 막걸리를 나눴다. 오해를 풀고 싶었다. 선생도 누그러졌고 그녀도 좀 편해졌다.

가는 자리마다 대체로 불협화음이었다. 비교적 큰 기획사의 제안도 있었지만 높은 사람이 와서 거들먹거리는 걸 보니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공연기획사에도 들어갔다가 나왔다. 2집 발매를 앞두고 녹음 스케줄까지 잡아놓은 프로듀서가 갑자기 그만두었다. 혼자 모든 걸 하니 쇼케이스를 마치고는 토할 지경이 되었다. 지금 회사에 몸담은 지는 2년째, 최장 기간이다. 강허달림을 닮은 매니저가 곁을 지키고 있다.  왁자지껄해서 좋다.

2집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블루지’한 곡이 제일 잘 맞는다는 걸 알았다. “블루스가 참 멋있는 게, 음이 단순한데 같은 음을 해도 다음 음 때는 다르게 들린다. 계속 들어도 지루하지 않은 거다. 한 음을 해도 순간순간 다른 음을 내줘야 하니 얼마나 공력이 많이 들겠나.” 의외로 포크 음악을 하는 흑인 여성 보컬 트레이시 채프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렵지 않은 가사로 읊조리듯 말하는 그녀의 음악이 좋았다. 

멍한 시간이 없어졌다. 전엔 틈만 나면 메모했고 쌓이는 메모장이 가장 뿌듯했다. 아이를 갖고 나서는 2년째 같은 노트를 쓰고 있다. 할 말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가사 때문에 잠이 안 온다. 더 잘해야 한다는 중압감은 여전하다. “음악은 여전히 중요해요. 제 전부잖아요.” 다만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전에는 음악만 생각하며 스스로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결정 내릴 때도 단칼이었는데 요즘은 이것도 저것도 고심한다. 아내보다 ‘딴따라’를 더 많이 알고 있는 남편과 아이를 비롯해 같이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들도 중요하다.

질문마다 답변이 거침없다. 목을 아껴야 한다면서 커피를 찾고 목청껏 수다스럽다가도 금세 눈물이 날 것 같고, 얼마 전 겪은 일에 얼굴 빨개지며 분개하기도 했다. 요즘은 11월쯤 나올 리메이크 앨범을 녹음 중이다. 한국의 블루스 곡들로 채우려고 했지만 여성 보컬의 곡이 많지 않아 기존 가요를 ‘블루지’하게 재해석했다. 작곡가에게 일일이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거액이 드는 곡은 넣지 못해 아쉽다. 그래도 녹음한 곡이 마음에 드는 눈치다. 인터뷰가 끝나면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오고 저녁 땐 프로듀서와 ‘작전 회의’를 해야 한다. 계속될 이중생활. 강허달림의 표정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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