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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미·장필순·강허달림의 3인 3색 村스러운 수다

그 섬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제2의 인생을 찾아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으러, 그저 좋아서 그곳으로 향한다. 차로는 닿을 수 없는, 고립의 섬으로. 스스로 제주에 갇힌 세 여자의 훨훨 날아다니는 인생 이야기다. 글 지유리 기자 사진 최수연 기자

제주도 매력이요? 살아봐야 안다니까요!

사진 태풍 ‘찬투’가 대만쯤 당도했단다. 제주에는 벌써 비바람이 세차다. 갈지자로 휘날리는 빗방울에 챙겨 온 우산을꺼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예보를 알면서도 비행기에 오른 건 2년 전 제주에 집을 마련한 윤영미 아나운서(59)의소식을 듣고서다. 6년 차 제주 주민인 가수 강허달림(47)과 16년째 제주 애월읍 소길댁으로 사는 가수 장필순(58)과 뭉친단다. 서울에서 잘 먹고 잘 살다가 훌쩍 섬마을로떠난 여자 셋. 이들이 모여 무슨 이야기를 할까 궁금하지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또 얼마나 잘 사는지도 내심 물어
볼 심산이었다. 만남의 장소는 윤영미의 제주 집이다.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고 했던가. 제주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이들의 수다는 순식간에 어색함을깼다. 깨진 틈으로 잠시의 적막도 새어 들지 못했다. 소소한 일상이 쉴 새 없이 이어졌고 명랑한 웃음소리가 말과말 사이를 메웠다. 제주 좋다는 자랑 잠깐, 그래도 불편한점이 있다며 불평 잠깐, 그러나 어쨌거나 나 살 곳은 여기라는 예찬은 길었다. 그래서 결국 제주의 매력이 무엇이냐 묻는 말엔 세 사람 모두 같은 답을 내놓았다.“여행으로 왔다 가면 몰라요. 살아봐야 알지!”

[내가 제주에 온 이유]
<장필순(이하 장)> 원래도 제주를 좋아했어요. 음반 작업을 꽤 여러 번 여기서 했었고요. 늘 언젠가 와서 살아야지 생각하던 곳이에요.



<강허달림(이하 강)> 저도요. 음반 활동 끝나면 내려와서 도보 여행 하고 그랬어요. 그럼 좀 속이 채워지더라고요. 친구들도 많았고요.



<윤영미(이하 윤)> 달림이는 제주 사람이랑 결혼했잖아.



<강> 남편이 제주?서 일하거든요. 3년 전엔 집도 지었어요.


얼마 전에 남편 회사가 서울로 올라간다 만다 하더라고요. 한편으로 서울 가고 싶기도 했는데, 역시 남길 잘했죠.



<윤> 저는 진짜 우연히 왔어요. 물론 여행지로 제주를 너무 좋아했지만 살게 될 줄은 몰랐지. 언젠가 제주 한달살이를 하는 친한 사진가가 관광객을 모아서 사진 찍는 법 알려주는 투어를 한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사진 잘 찍히는 법을 가르쳐주기로 하고 참여했어요. 근데 하필이면 당일에 태풍이 왔어요. 투어 취소를 안 한 관광객 세 명하고 일단 출발을 했죠. 그때 곶자왈을 처음 갔어요. 바닷가에도 갔는데, 내가 한 시간 동안 그 앞에 서서 소리를 질렀잖아. 파도가 현무암에 부딪치는 모습이 장관인 거예요. 파도가 입을 벌리고 쫓아오는 것 같더라고요. 생전 그런 바다를 처음 본 거지. 너무 무서운데 너무 멋있어! 여행은 날씨 좋을 때만 하잖아요. 그런 건 절대 못 봐요. 다음 날 하늘은 어떤지 알아요? 구름이 새가 되고 용이 되고 그래요. 그건 태풍 온 다음 날 아니면 못 보는 거예요. 그때 내가 ‘아, 이 모습은 여기 살아야 보는 거구나’ 알았어요. 그날로 제주 사는 아는 후배네 집에 몇 달간 머물면서 이 집을
얻은 거죠.



<장> 제주 바다는 진짜 다른 데하곤 달라요. 동해나 서해에서 보는 것하고는 완전 딴판이죠. 절벽에 서면 파도가 와서 바위를 탁 치는 느낌이 되게 세요. 보고 있으면 뭐랄까,내가 되게 작게 느껴져요. 자연에 경외심이 들죠.



<강> 그런 힘이 있어요. 가끔 외롭고 답답해서 유배지에 갇힌 것 같다가도 숲 보고 풀 보고 하면 또 버텨져요. 그래서 제주에 사는가 봐요.



<윤> 나는 자연도 좋지만 사람도 좋아요. 어떤 사람은 집에 있으면 에너지를 얻고 그런다는데, 나는 집에만 있으면 막 슬퍼져. 여기엔 친구도 ?고 서울 사는 친구들이 놀러오기 좋잖아. 나에겐 사람이 제주 사는 이유 중 하나예요.



<장> 저는 밖을 잘 안 다니고 특별히 가깝게 지내는 사람도 별로 없어요. 정말 ‘집콕’이에요. 남편은 더하고요. 지금은 좀 나은데 처음 한 3년 정도는 교류가 아예 없었어요. 그래서 마을에 소문이 났대요. 남편이 죽을병에 걸렸다고. 하하. 우리가 화목 보일러를 때서 한겨울에 저 혼자 수레를 끌고 동네에 폐목재를 주우러 다녔거든요. 소문날 만도 했지. 그러다 3년 만에 마을 어르신이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어요. 왜 시골엔 그런 게 있잖아요. 마을 잔치 하니까 참석해라, 동네 청소할 때 나오라 하는 거. 제가 조용히 살려고 내려왔다니까, 그분이 조용히 사는 건 사는 거고 시골에 왔으면 인사를 하는 거래요. 그래서 마을 분들한테 식사 대접을 했죠. 귀찮거나 싫진 않았어요. 제가 어릴때 살던 동네도 다 그랬거든요. 옛날 사람들이 다 그렇죠 뭐. 시골은 다 똑같더라고요. 강 맞아요. 사람 사는 거 똑같아요. 인사 잘하고 기본예절 잘 지키면 따뜻하게 대해주세요. 제주 사람이 되게 편해요. 삼춘(제주에서 동네 어른을 이르는 말)들이 얼마나 많이 챙겨주시는데요.



<윤> 그럼. 지나가다가 부르셔서 브로콜리를 막 이만큼씩 가져다주세요. 낚시했다고 또 뭘 주시고. 제주 사람이 정이 많아요.



<강> 저는 집 지을 때 사람들이 몰려와서 차 한 잔 달라고 하고 집 구경시켜달라고 하고 그랬어요. 서울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그런데 저는 익숙해요. 제가 진짜 두메산골에서 태어났거든요. 어릴 때 경험하며 자란 게 영향이 있겠죠. 아이가 아홉 살인데 시골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도 제주에 사는 이유 중 하나예요. 도시 와서 살다 보니까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게 큰 에너지더라고요. 가끔씩 아이 붙잡고 “꽃 좀 봐, 예쁘지?” 하고 알려주려고 해도 관심 없어 해요. 지금은 모르겠지만 아마 어른이 되면 알겠죠. 몸이 시골 정서를 기억할 거예요.



[슈퍼까지 10㎞…깡촌생활을 버티게 하는 건]
<윤> 근데 나는 제주도를 정말 사랑하지만 제주도에서만 살라면 못 살 것 같아요. 지금도 서울·제주 왔다 갔다 해요.제주에선 1년 중 1/3 정도 살아요. 그런 노마드(nomad·유랑자)의 삶이 좋은 것 같아. 내 꿈이 원래 강원도·전라도에 집 한 채씩 두는 거였거든. 그럼 전국을 편히 다닐 수 있잖아. 제주에서 여행하는 마음으로 살아서 더 빨리 적응 ?어요.



<강> 비슷한 건가? 훌쩍 호젓한 바에 가서 한잔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여기선 안 돼요. 밤 9시만 되면 사위가 아주 캄캄해요. 우리 집은 특히 외졌거든요. 집 앞 슈퍼까지 10㎞예요. 차 타고 10분을 가야 한다니까. 제가 원래 사람 자주 만나는 성격은 아닌데, 그런 기회 자체가 없으니까 단절된 느낌이 들죠. 섬이 약간 유배지 같을 때가 있어요.



<장> 저는 이제 서울에선 못 살아요. 벌써 제주에서 17년이 에요. 어디 갈 데도 없어요.



<강> 근데 장 선배님, 백화점 좋아하신다면서요?

<장> 맞아. 나 백화점 좋아해. ?하. 서울에 가면 꼭 강남 신세계백화점에 가. 거기 5층에 내가 좋아하는 옷 브랜드가 있거든. 거기서 새로 나온 바지 좀 구경하다가 지하 1층에 가는 거지. 맛있는 빵이 진짜 많거든. 두 손 가득 빵을 사서 지하철 타고 김포공항에 오는 거야. 그럼 또 롯데몰에 들러서 500원짜리 단팥빵 하나 먹고 비행기를 타면 딱맞지. 다른 게 아니고 내가 강남에서 태어나고 자랐거든. 그 동네에서만 40년 넘게 살았으니까 익숙하잖아. 그렇다고 제주 집 냉장고에 빵 떨어졌다고 서울이 그립거나
제주가 아쉬운 건 절대 아니에요.



<강> 저도 뭐 술집 못 간다고 제주가 아쉬운 건 아녜요. 요즘제가 정원 일을 시작했거든요. 그전에는 그런 거 안 했죠. 할 시간도 없고 할 데도 없고. 요즘은 풀하고 꽃 들여다보면서 마음을 다잡고 버티고 있어요. 한없이 답답하다가도 어쨌든 위안을 주는 건 자연인 것 같아요. 윤 원래 누굴 좋아하면 뭘 하든 좋다고 하잖아요. 아이를 생각해봐. 웃어도 예쁘고 울어도 예쁘지. 아이가 똥을 싸도 예뻐. 제주 자연이 그래. 흔히 ‘날씨가 지랄맞다’고 하는데 그럴 때도 너무너무 예쁘고 좋아.



[내 인생의 빈칸을 채우다]
<윤> 제 나이가 이제 60이에요. ?들은 이쯤 되면 은퇴하고 기운이 사그라지거든요. 근데 나는 제주에 살면서 생기를 얻었어요. 학교 졸업하고 서울에선 내내 일만 했거든요. 제주에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맞춰졌어요. 그러면서 꿈도 생겼어요. 제가 프리랜서가 되고선 여행책을 썼어요. 앞으로 제주를 샅샅이 다니면서 여행책을 쓰는게 목표예요. 여기 자연 속에서 보낸 2년이 다른 시절 시간과는 달라요. 나에게 훨씬 큰 영향력과 에너지를 줬어요. 비로소 내가 완성된 느낌을 받아요.



<장> 저는 서울에서 40여 년, 제주에서 17년이잖아요. 여기서 산 세월이 인생쟀 반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훨씬 밀도 있는 시간이었어요.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줬어요. 음악 활동도 여기 와서 더 활발히 했어요. 사실 서울에서 음악이 마음처럼 안 돼 차선책을 찾아서 왔는데, 지금은 제주 에서의 음악이 최선책이 됐어요.



<강> 저는 여기 와서 진짜 많이 변했어요. 가족과 많이 시간을 보내서이기도 할 테지만요. 그전엔 강박 같은 것들이 있었거든요. 뭐든지 완벽해야 하고 통제해야 하고. 여기 산 이후론 스스로에게 여유가 생겼어요. 일부러 변하려고 하거나 누구한테 배운 건 아니에요. 그런데 전원이란게 그렇잖아요. 여유 있고 너그럽고 다 품어주는. 재촉하지 않는 곳에서 살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지금의 나도, 지금의 삶도 감사하고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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